[컬쳐플레이트] 오가음
문화를 담는 그릇

 

안녕하세요. 우선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로컬멀티플라이와는 구면인데 이렇게 인사를 드리니 어색하네요. <컬쳐플레이트>의 오가음입니다. 지금은 문화기획자로, 그리고 영상제작자 포지션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컬쳐플레이트>란 이름의 유래가 궁금해요.

저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컬쳐플레이트>란 이름 자체가 ‘문화를 담는 그릇’이잖아요. 문화를 다 담아버리겠다는 일념으로 그런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가끔 제 명함을 보고 “그래서 대체 뭐하는 회사냐”며 질문을 하는 분들도 계셔요. 어떤 회사 또는 단체인지 적어둔 내용이 없거든요. 저는 스스로를 규정짓거나 한가지 분야만 다루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단순하게 ‘문화를 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런 이름을 붙이게 된 거죠.

 

‘문화를 담는다’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컬쳐플레이트>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엔 회사를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단순히 생활문화를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활동하길 원했죠. 그러다 화성시 생활문화센터에서 진행한 ‘도이리 이틀키친’이라는 축제의 네가지 섹션 중 하나를 준비할 기회를 받게 됐어요. 당시에 생활문화기획학교에서 교육 과정을 거치고 있었는데, “영화 일을 하던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생활문화센터가 기회를 준 거죠. 근데 그 일을 맡으려면 등록된 사업자가 필요했어요. 심지어 처음 하는 일인데 간이과세자는 안되고 일반과세자로요. 그게 컬쳐플레이트의 첫 시작이었죠.

 

생활문화센터와 함께 시작한 셈이네요. 초창기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초창기엔 생활문화센터와 함께 기획하는 일들과 마을 만들기에 참여했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 때 향남은 ‘문화 불모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없으면 우리가 만들면 되지”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들이었죠. 그 외에는 활동이라 할 만한 건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냥 ‘많이 활발한 애’, ‘집에 가만 있는 게 안 되는 애’ 정도?

 

어떤 캐릭터였을지 알 것 같아요. 문화기획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제가 20대 초반이었을 때 영화사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당시 회사는 상업영화 한 편을 제대로 영화관에 걸어보지 못하고 3년 만에 문을 닫았어요. 그리고 내가 왜 영화 일을 시작했는지 상기하면서 같이 일 할 사람들을 모아 독립영화를 만들게 됐죠. 그 과정에서 전주국제영화제 ‘프로젝트 피칭’에서 지원작품에 선정되기도 했어요. 그 때가 성취감을 가장 많이 느낀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프로듀서로 6~7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쌓은 경험과 감정은 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됐고요.

 

영화 촬영은 많이 움직이는 일인데, 화성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그 후에 제가 결혼을 하면서요.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화성에 와서 일종의 경력 단절 상태가 된 거죠. 화성과의 연은 그렇게 시작됐어요. 지금은 여기까지 왔네요.

 

 

말씀하신대로 향남은 ‘문화 불모지’였어요. 정착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어려웠던 건 인프라가 없다는 점 하나였어요. 그 외에 저는 도움 받은 것들이 훨씬 많았어요. 생활문화센터나 마을 만들기나 제가 혼자서 한다고 뭔가가 이뤄지지는 않잖아요. 필요할 때 필요한 분들이 나타나주시고 저를 이끌어주신 덕분에 잘 올 수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이 곳은 아무 것도 없다’는 불평만 하다가 지금은 ‘여기는 아직 누구도 가꾸지 않은 기회의 땅’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어요. 기획자로서 완성된 사람은 아니라도 도전해 볼 기회가 있는 곳이죠. 그래서 지금은 모든 것들에 감사한 마음이에요.

 

문화기획자로서 경험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듣고 싶어요.

<컬쳐플레이트>가 진행하는 ‘소소한 살롱’을 얘기하고 싶어요. ‘소소한 살롱’은 ‘취향 공동체’를 찾기 위한 자리에요. 어느 날은 허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모였는데 60세가 넘은 남성 분과 전문적으로 허브를 재배하시는 분이 대화에 몰입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특별한 감정이 들었어요. “아. 이게 공동체구나”하는 마음이요. 물론 이런 살롱은 수익을 낼 수는 없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죠. 그래도 살롱을 통해 커뮤니티가 이뤄지는 모습을 보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공감살롱’에 대한 얘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공감살롱’은 감정을 주제로 한 참여형 토크 살롱이에요.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그걸 밖으로 꺼내면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단 온전히 내 감정을 느끼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 바로 ‘공감살롱’입니다. 영화를 매개로 해서인지 친숙하게 느끼시는 분들이 많아요. 에피소드가 있다면 코로나19 때문에 소규모로, 아주 사적인 감정에 대해 얘기하다보니 참가하신 분들이 겉으론 잘 드러나지 않는 아픈 상처를 드러내시기도 하거든요. 저도 다른 참가자 분들도 울컥했어요. 살롱 이름처럼 모두가 ‘공감’하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지역 내 활동이 더 조명되기 위해선 어떤 게 필요할까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알려지기 위한 수단이에요. 저는 인스타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SNS에서 다른 사람의 문화적 활동을 통해 인사이트를 얻을 수도, 제 활동을 알려서 화성 또는 인근 주민들에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채널 역할도 하는 거죠. 그 외에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잠시 화제를 바꿔서, <컬쳐플레이트> 오가음에게 ‘로컬’은 어떤 의미인가요?

질문지를 받고 한밤 중에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대다수에게 이 질문을 하면 ‘지방’의 개념으로 접근할 것 같아요. 저는 지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생각했을 때 매력있게 느껴지는 곳이 저의 로컬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화성시가 그렇지만, 앞으로 나에게 그 매력을 선사하는 모든 곳이 저에겐 로컬이 될 수 있는거죠.

 

멋진 답변인데요. 앞으로 로컬에서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건 뭐가 있을지 궁금해요.

‘뭘 하고 싶다’보다는 ‘뭐든 할 수 있는 공간’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저는 생활문화센터를 비롯해 공공기관과 함께 일을 한 경험이 많은 편이에요. 하지만 공공기관의 특성상 어딘가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죠. 그래서 기획하는 것 중 하나가 <월간 공간>인데요. 제가 준비하는 살롱 뿐만 아니라 매달 뭔가 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걸 기획하고 꾸리는 기회의 공간이 되는 거죠.

 

 

그렇다면 10년 뒤 <컬쳐플레이트>는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아마 땅 파고 있지 않을까요? <월간 공간>을 만들고 그 옆에서 확장을 위해 땅을 더 파고 있을 거에요. 도시재생의 ‘재생’이란 키워드가 참 매력적이라고 느껴요. 기존의 공간을 부수지 않고 구조에 매력적인 콘텐츠를 더하는 거잖아요. 환경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지역을 활성화시킨다는 것도 좋은 의미고요. 군산의 <리즈리> 카페처럼요. 화성에서도 도시재생이 이뤄지면서 그 안에 꿈꾸는 공간을 둘 수 있게 된다면 그게 제가 바라는 모습일 것 같아요.

 

저희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통해 전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가 행복한 일들을 하고 있거든요.  저와 아주 가까운 한 사람은 행복하지 못했어요. 회사에 다니는 게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고 거기에 지쳤던 거죠. 요즘은 저와 함께 영상 편집 일을 하는데, 오늘 아침에도 “이렇게 영상 편집 일을 하는 것도,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것도 행복하다”고 말했어요. 이 인터뷰를 어떤 분들이 어떻게 보시게 될 지는 모르지만 꼭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요즘 같은 세상에 더 필요한 말이기도 하지만, 행복이란 건 생각보다 일상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단어거든요. 개개인이 행복해지면서 세상도 행복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