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화성에서 본 지구] 한혜수
무대 위의 지역역사 기록자

 

안녕하세요. 먼저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반갑습니다! 한혜수입니다. 2015년부터 극단 <화성에서 본 지구>로 화성에서 활동하며 대표, 잡부,  배우,  그리고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많은 일을 하고 계시네요. <화성에서 본 지구>의 콘텐츠를 소개하자면 어떤 내용일까요?

가장 큰 특징은 지역의 역사와 연계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는 거에요. 예를 들면, 향교에서 옛 과거 제도를 모티브로 한 프로그램, 충효 로드액션, 화성시를 배경으로 펼쳐졌던 독립운동을 모티브로 한 시간 여행 프로그램이 있었죠. 그 외에도 동탄의 탄요유적공원이나 남양 도호부사에 관한 이야기를 발굴하고 지역 주민들이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어쩌다 화성에서 활동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긴 이야기인데, 저는 MBC 마당놀이로 잘 알려진 <극단 미추>에서 연극배우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 육아 문제로 2003년부터 타 지역과 화성을 오가게 되고, 아이에게 신경을 더 쓰기 위해 2009년에 화성에 정착하게 됐죠. 그러다 2013년부터는 <자전거 날다>란 이름의 창작 스튜디오로 화성시의 지원을 받아 지역 연계 커뮤니티 사업을 진행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 땐 안 좋은 얘길 많이 들었죠.

 

안 좋은 얘기요?

저나 남편의 주소지는 화성시였지만, 스튜디오는 서울에 있었거든요. 소위 말하는 ‘먹튀’아니냐는 말도 많이 들었고, 알음알음 알게 돼 함께 돕겠다고 하시던 분들이 저희가 시의 지원금을 받자 태도를 바꾼 적도 있었어요. 저희는 저희 극단을 통해 일을 하려고 했는데 그 분들은 자신들의 단체에 가입을 시키려는 생각이었던 거였죠. 그 외에도 파이 싸움의 경쟁 상대로 저희를 바라본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그 때 생각이 든 거죠. “아. 화성에서만 활동하는 극단을 만들어야겠다”하고요.

 

그렇게 시작된 게 <화성에서 본 지구>군요. 같은 지역 활동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끼리 텃세를 부린다니 아쉬워요.

생각보단 그런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것 같아요. 큰 단체가 자리잡고 있는 곳에선 그게 ‘룰대로’ 움직이는 거겠죠. 하지만 그 룰에 넘어가지 않기를 잘 했다고 생각한 시기가 있었어요. 그 즈음 다양한 지역 예술단체간의 모임에 초대를 받고 참석했는데 모두가 각자가 겪은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거든요. 그렇게 <화성에서 본 지구>로 화성 서부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기로 마음을 굳힐 수 있었어요.

 

그렇다면 화성에서의 활동을 결심하신 계기는 육아 때문이었나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2013년에 저희 아이들을 비롯해 지역의 학생들을 보면서 화성에서 즐길 문화 콘텐츠가 너무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자전거 날다>로 다른 지역에 공연을 다녀오면 그동안 아이는 그저 밖에서 뛰어노는데 다였어요. 딱히 갈 곳도 할 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비슷한 문제로 시험기간이 되면 동네 중고등학생들이 버스정류장에 우르르 모여 있었어요. 학교는 일찍 끝났는데 동네엔 아무 것도 없으니까 수원으로, 안산으로, 서울로 각자 나가는 거였죠. 그러고 나면 동네에 아이들이 남아있지 않았고요. 동네에 청소년들이 갈 공간이 너무 없던 거죠. 그 당시 상가엔 전부 다방이고, 집 근처엔 논과 밭 뿐이었으니까요.

 

 

문화 콘텐츠가 절실한 상황이었네요.

그래서 지역 학부모들과 함께 논의를 시작했어요. “내가 이런 걸 할 생각인데, 사람이 안 모인다면 소용이 없다”라면서요. 이건 참 역설적인 얘기인데, 즐길거리가 많은 서울에서는 작은 문화 공연을 준비하면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높지 않아요. 그게 아니어도 다양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때 준비한 ‘숨쉬는 전통, 남양에서 놀자’라는 프로그램에 이틀만에 신청자가 30명이 넘었어요.

 

호응이 뜨거웠네요! <화성에서 본 지구>의 취지와도 잘 맞고요.

맞아요. 지금도 <화성에서 본 지구>의 모토는 ‘통통통’이에요. ‘옛 것을 통해서, 새로운 전통을’이란 뜻이죠. 지금 지역에서 즐기는 것들도 100년이 지나면 전통이 될 텐데 조금 더 좋은 전통을 남기자는 취지에요. 외부의 것만 차용하기보다는 화성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토대로 지역을 꾸며갈 수 있잖아요. 남원시를 예로 들자면 고속도로에서 톨게이트만 지나도 온통 춘향이와 이몽룡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풍경이거든요.

 

그렇다면 화성 서부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요?

2013년에 ‘숨쉬는 전통, 남양에서 놀자’에 소개됐던 윤계 선생 이야기를 들고 싶어요. 남양도호부의 부사였고 병자호란이 발발했을 때 의병을 모집하다 순절한 인물이에요. 윤계 선생과 관련된 유적지가 많았는데,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많이 손상되고 지금은 풍화당(風化堂)이란 곳만 남아 있어요. 그런데 지역 주민들도 잘 모를 만큼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고 주변은 언젠가 개발이 될지도 모른단 기대로 누군가 방치한 빈 컨테이너 박스들이 놓여 있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지역 주민 반응도 좋았을 것 같아요.

특히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죠. 아이들이 직접 남양의 역사를 찾아 갈 수 있도록 대상을 찾아 인터뷰를 하거나 직접 스스록 바라는 미래의 모습을 담아 자신의 명함을 만드는 식의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그렇게 프로그램을 마쳤을 땐 읍사무소에 모든 성과를 전시하고 아이들이 직접 테이프 커팅식까지 했어요. 비록 서른 명이 잘라서 조각은 아주 작았지만.

 

 

그렇게 쌓인 경험이 다음 프로그램을 진행할 자신감이 될 수도 있었겠는데요?

맞아요. 그 다음부턴 동네에 제가 연극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알려져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죠. 모내기 철에 여섯 시부터 공연을 하는데 세 시 쯤 농사 일을 하시던 어른들이 공연 장소를 찾아오셨어요. 신기하고 재밌는 걸 한다면서요. <화성에서 본 지구>를 창단한 데는 성과를 내고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있어요. 지역 커뮤니티 역할을 하기 위해서요. 생각해보면 제 지역 기반 활동은 아이 때문에 시작했지만 연결에 연결이 이어지면서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시와 함께 화성의 문화유적지를 조명한 게 대표적이죠. 서남부에서는 제암리 독립운동과 남양 향교, 동부에서는 동탄 탄요유적공원이요. 그 과정에서 시에서 요청이 들어와 <화성에서 본 지구>의 업종 변경도 있었어요. 단순 연극단체가 아닌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교육 용역도 할 수 있는 기업이 된 거죠.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것들이 달라졌잖아요. 특히 연극은 공간이 필요한 활동인데 어떤 점이 바뀌었는지 궁금해요.

아무래도 인식이 달라진 게 가장 크죠. 감염병이 확산되고 각종 시설이 문을 닫을 때, 극장이 유흥업소와 함께 묶여 제재를 받았어요. 유흥업소와 다르게 극장은 체온 측정 등 절차를 거친 관객이 지정된 좌석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잖아요. 100명 정도를 수용하는 소극장에서도 거리두기를 하고 있고요. 연기자, 스태프, 관객까지 모두가 업계의 구성원이란 생각을 가지고 조심하는 거죠. 그래서 3월 경에 감염자가 극장에 다녀갔을 때 추가 확산이 되지 않은 사례도 있었고요. 아, 그리고 코로나19가 바꿔놓은 게 하나 더 있네요.

 

어떤 부분인가요?

저는 ‘예술가를 위한 지원사업’이 ‘예술가를 통한, 시민들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하는’ 사업이라고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코로나19가 패러다임을 그렇게 바꾸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공공기관에서 공연비를 받고 공연을 준비한다면 그건 ‘지원’이 아닌 일에 대한 대가를 받는 거잖아요. 비록 예술가들이 사무실이나 출퇴근 시간 등 근무 환경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해도 결국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요. 비슷한 예로 예술활동을 하는 기업이 기업 대상의 지원사업에 선정 된다고 해도 지원금을 받기 위해선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구조를 갖춰야 해요. 연습 시간 등 유동적으로 활용하기가 어렵다는 의미죠. 그렇게 현실과 제도 사이의 괴리를 마주하다 보면 “내가 뭘 위해서?”하는 마음이 들기도 해요.

 

아쉬운 부분이네요.

그렇죠. 남들이 가던 길을 가고 싶어 하고, 남들이 이미 많이 보는 걸 보고 싶어 해요. <화성에서 본 지구> 프로그램 중 하나가 제암리 독립 만세 운동을 다루는데, 공공기관에서는 화성과 접점이 많지 않아도 잘 알려진 안중근 의사를 다뤘으면 하는 거죠.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에서 일어났던 의미 있는 역사적 사건을 외면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어요. 꼭 잘 알려진 개인이 있어서 영웅이 아니라, 시민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활동을 계획하며 바라시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문화재단 대표님께서 제게 “화성에도 스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제가 그렇게 되겠단 말은 아니고.  제가 지역 기반으로 활동을 이어오면서 화성시 안에서 저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겼어요.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구성했다 보니 학생들이 특히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우리 지역에도 문화예술가가 있다’는 자부심이 생긴 거죠. 저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지역의 스타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화성시 안에서 서로 다른 권역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문화 셔틀버스’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동부권은 개발이 많이 이뤄져 자연의 모습을 찾기는 어려운 반면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면, 서부권은 반대인 상황이잖아요. 만약 문화 셔틀버스를 만든다면 반대편 권역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거라 생각해요.

 

그렇다면 앞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으신 콘텐츠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어요.

지속 가능한 문화 축제를 만들고 싶어요. 올해 ‘마을해설사’를 통해 마을 주민분들과 각자가 만들고 싶은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 적 있었어요. 태풍과 코로나19가 많은 걸 휩쓸고 지나갔음에도 프로그램에 참여하신 45분 중 42분이 끝까지 수료하셨어요. 문화 소외지역에 산다고 해서 문화 콘텐츠를 향한 욕구가 없는 게 아니란 의미죠. 그런데 단독으로는 할 수 없고, 많은 분들과 두터운 신뢰관계를 쌓아 지속 가능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해야 하죠.

 

힘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로컬브릿지도 함께했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통해 전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아까 말씀드린 ‘통통통’처럼 뭔가 제목 붙이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이번에 하고 싶은 말은 ‘같이, 가치’로 요약하고 싶네요. 만약 지역에 대한 애착과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함께 해봤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러기 위해 상황에 맞는 유연함이 필요해요. 격식이나 정해진 순서에 따라 움직이기보단 각자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존중하며 아이디어를 완성하는 거죠. 표면적인 것보다 내면을 더 중시하고 이야기 나누면서요. 제가 이런 걸 좋아해서 연극을 하는 것 같아요.